제가 부임한 이후 처음으로 대면예배를 하게 됩니다. 기념으로 아내와 제가 만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아내가 21, 그리고 제가 25살에 저희는 처음으로 서로를 알게 되었습니다. 4 차이면 여러분이 생각하기엔 많이 나는 같지 않나요? 이제 1 이들에겐 4 연하라면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많이 차이가 나죠? 애기 같지 않나요? 하지만 나이가 30 정도 먹고 나면 5살까지는 거의 친구나 다름 없습니다. 저도 지금에야 아내가 어리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만 25살에는 어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력적인 후배고 사귀어보면 좋겠다는 좋은 첫인상은 있었지만무척 어리다 생각이 짙었습니다. 그리고 상태에서 아내가 26, 제가 30살이 되기까지 우리는 서로 알기만 하는 사이, 1년에 정도 커피 마시는 정도의 사이로 지내왔습니다.

 

우연히 아내는 저를 알고 있는 다른 친구들과 만나서 놀다가 얘기가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집으로 돌아오는데 문득 저에게 카톡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당시 저는 운동 중이었는데요. 서로 오랜만에 카톡을 주고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느때와 다르지 않게 만나서 먹고 커피 마시고는 헤어지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날따라 이상하게 아내가 갑자기 옛날 이야기를 했습니다. 청소년 시절 부모님과 갈등을 겪으면서 힘들었던 이야기. 오래 알고 있던 사이였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힘든 이야기, 고생한 이야기, 덕분에 성숙할 있었던 이야기. 이상하게도 저는 이야기를 듣는데 처음으로 4 어린 매력적인 여자 후배가 아니라, 명의 매력적인 여성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헤어질 말했습니다. “ 마음에 든다. 좋다. 만나보자그리고 결국 결혼해서 5년째 살고 있습니다. 

 

그때가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했던 것일까요? 나아가 저는 그때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내게에 빠져버렸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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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유명한 왕입니다. 그런데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왕의 아들로 태어나 왕위를 물려받았냐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조차 그가 왕이 되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하나님께서 그의 예언자를 보내셔서 그를 왕으로 삼으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삼으시겠다고 선언하셨을 , 그때는 이미 다른 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울이라는 사람이 왕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미 왕이 있는데 왕으로 삼으시겠다는 예언을 받게 다윗, 이후로 그의 삶은 평범하지 않게 흘러갑니다. 먼저 그는 누구보다 나가는 장수가 됩니다. 능력을 인정받습니다. 대적인 골리앗을 무찌릅니다. 위대한 장수로 추앙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악기 실력을 통해 귀신도 쫓아내서 총애를 받습니다. 반면 그의 인기가 점점 올라간다는 사실, 또한 그를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통해 왕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당시의 왕이었던 사울이 알게되면서 다윗이 괴롭힘을 당하게 됩니다. 시기와 질투를 몸에 받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그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도망을 가기로 결심합니다. 사무엘상 22 1-2절을 보십시다.

 

다윗은 도망을 갔습니다. 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망을 갔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일어난 일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일이었습니다. 환난당한 사람들, 빚진 사람들, 마음이 원통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모여들었을까요? 간단합니다. 모두가 억울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억울했습니다. 그는 사울을 왕으로 모셨습니다. 사울에게 해가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기와 질투 때문에 도망쳐야 했던 억울한 인생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억울한 인생들은 다윗에게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아둘람굴이란 곳에서 동거동락하며 하나의 중요한 집단으로 성장합니다. 훗날 다윗이 왕으로 등극하게 때에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다윗에게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억울했다는 이유로 뭉친 이들의 연대는 다른 어떤 연대보다 더욱 끈끈하고 탄탄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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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아프다는 , 외롭고 고통스럽다는 , 원통하고 억울하다는 , 모두 안좋고 부정적인 감정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서로 공유가 되고 공감이 사람들은 끈끈한 우정이 생겨납니다. 저는 아내가 힘들었던 옛날 이야기를 때에 나도 모르게 아내에 대한 마음이 싹터버렸습니다. 아내가 힘들었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가 힘들었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둘람굴에 모여든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이 억울하고 힘든 일을 당해서 도망왔을 때에 자신도 모르게 다윗에 대한 마음이 싹터버렸습니다. 다윗이 힘들고 억울한 이야기가 바로 자신의 이야기 같았기 때문입니다.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힘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저와 아내는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다윗에게 모여든 사람들도 함께 억울했다는 이유 때문에 하나의 중요한 집단을 형성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만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좋은 선생님이셨습니다. 하시는 말씀들 가운데 귀담아 들을 말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능력자였습니다. 기적을 행하기도 하셨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기도 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인기가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왕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을 갖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예수님은 로마군에게 잡혀서 십자가형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의 바람과는 전혀 어긋난 상황이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진행되자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그의 행적들을 눈여겨보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른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그런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다들 예수님을 버리고 모른척하는 상황 속에서, 무엇보다도 같은 패거리로 인식된다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도, 꿋꿋히 예수님을 지켜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기록된 모두 여성들입니다. 여성들이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한 이유는반란군이라는 죄목입니다. 반란을 주도하려 했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과 함께 하는 남자들은 똑같은반란군이라는 누명을 덮어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여성들은 철저히 배제됩니다.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숨어있던 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이름붙여진 사람입니다. 혹자는 사도 요한이라고 말합니다. 혹자는 다른 여자 제자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남자였다면 오해를 받고 죽임을 당했을테니까요.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그가 누구던 간에 숨어들어온 제자가 십자가에 있었습니다. 명의 여성과 명의 제자가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채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보소서 자녀입니다어머니 마리아에게 제자를 부탁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제자에게 말합니다. ‘보라 어머니라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이후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부터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예수님의 어머니와 사랑받는 제자는 이제 가족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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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셨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에 예수님이 하셔야 아들의 역할을 제자에게 맡겼다는 의미일까요? 아닙니다. 이는 교회의 탄생을 다룬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는, 또한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어머니 마리아는, 이제 방향을 잃어버렸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을 따라 살아왔는데 이제부터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서로 가족이 되라고. 이는 교회의 탄생입니다. 분의 하나님 아버지 아래에서 모두가 형제, 자매가 되는 공동체, 교회의 탄생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받는 제자만이 같이 살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모든 이들이 가족이 되어 함께 돌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예수님의 고통아래에 묶여진 가족입니다. 예수님을 잃는 상실의 고통 속에서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받는 제자는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는 하나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을 잃은 상처입은 사람입니다. 사랑받는 제자는 선생을 잃은 상처입은 사람입니다. 이제 상처입은 사람끼리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가장 근원적인 이미지입니다. 아픈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 이는 아둘람굴의 이야기와 동일합니다. 똑같이 억울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질때 가족이 됩니다. 저와 아내의 이야기도 동일합니다. 똑같이 과거에 힘들었던 사람끼리 모여서 힘들었던 얘기를 하며 서로를 위로할 사랑의 싹트고 가족이 되었습니다. 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살면서 힘들고 아프고 상처입은 곳을 서로 어루만져주고 다독여주면서괜찮아말해주는 , 그곳이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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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교회 학생회는 크게 가지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생각됩니다. 

 

하나는 사춘기의 어려움입니다. 속칭 <2>으로 표현되는 호르몬이 폭발하여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방황을 합니다. 힘들어합니다. 자기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또한 타인의 외모, 타인의 가정환경, 타인의 성적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우울해하며 자존감이 바닥을 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나만 겪는 어려움이 아닙니다. 나만 아픈 상처이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교회로 만났습니다. 교회로 만났다는 말은 아둘람 굴에서 다윗과 모여든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했듯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받는 제자가 서로를 위로하며 힘이 되어주었듯이, 우리도 그렇게 살자는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입시와 진로의 어려움입니다. 대학을 가던 아니면 직장을 잡던, 내가 세상에 발을 내딛는 걸음을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우리 학생회가 겪고 있는 시기입니다. 괜히 부족한 성적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잘하거나 좋아하는지 모르는 모습이 한심해보이기도 하고, 꿈은 크지만 그에 따라가지 못하는 실력이 화가 때도 있는 상황을 각자가 겪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또한 생각해보십시오. 나만 겪는 어려움이지 않습니다. 나만 아파하고 힘들어하며 화가 나는 것이지 않습니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로 만났다는 이유는 서로 위로하자는 겁니다. 서로 힘이 되어주자는 겁니다. 서로 으쌰으쌰하자는 겁니다. 

 

그러니 저부터 여러분에게 으쌰으쌰를 많이 하겠습니다. 저부터 여러분의 칭얼거림을 들어주겠습니다. 여러분의 아프고 힘든 곳을 보다듬어주겠습니다. 또한 선생님들도 그렇게 해주실 것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기억해주셔야 합니다. 그래봤자 저는 아저씨입니다. 이해한다고 해봤자 저는 꼰대입니다. 젊은 해봤자 어차피 저도 어른입니다. 여러분이 겪는 어려움과 힘든 시절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이해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나이가 먹다보니 서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조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먼저 이해주십시오. 나아가 어차피 어른들은 이해할 수는 없으니 여러분이 먼저 서로를 이해해주십시오. 나이가 어려도 괜찮습니다. 나보다 선배라도 괜찮습니다. 나보다 상황이 좋은 사람이라 한들 괜찮습니다.

 

교회는 원래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보소서 자녀입니다.’  보라 어머니라 각자 힘들고 어렵고 상처입은 사람들 모아놓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봐라 형이다’, ‘봐라 누나다’, ‘봐라 형제다. 자매다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힘이 되는 학생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