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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예수님의 경제학 강의

서평 모음



들어가는 말 :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돈에 대한 책을 들춰놓고 보니 막 취업을 고민하던 나날이 기억난다. 취업을 하려고 보니 정말 떳떳하고 정당하게 돈을 벌 수 있는 바른 직업이 잘 보이질 않았다. 더군다나 도대체 어느 정도의 연봉을 받는 직장을 원해야 하는지도 난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직장을 선택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어쩌면 노동으로 번 돈을 관리하는 일에서부터, 더 나아가서 소비하는 일까지, 어쩌면 우리는 가장 많은 고민을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고민을 할 때면 살포시 이런 생각을 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본 책 <예수님의 경제학 강의>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돈에 대해서 다룬 책이다. 신약학자인 저자 밴 위더링턴 3세는 주로 신약성경을 중심으로 돈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룬다. 단순히 지침을 끌어내기보다는 각 성경별로 어떤 강조점을 지니고 있는지, 또한 특정 상황에서 어떤 지침을 내렸는지를 말한다. 그럼 한 번 각 챕터별로 간략한 내용을 들춰보자.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저자는 첫 챕터부터 우리의 잘못된 이해를 짚고 넘어간다. 이를테면 사유재산에 관한 문제다. (놀랍게도) 성경의 창조신학은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로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따라서 자선행위도 권면의 차원이나, 선택의 차원이 아닌, 명령의 차원이다. 십일조도 문제다. 아니, 십일조를 강조하는 설교자가 문제다. 십일조를 강조하는 설교는 많다. 하지만 구약에서 중차대한 문제인 고리대금을 금지하는 설교는 들어보기 힘들다. ‘가난한 자의 돈을 뺏지 말라는 성경의 메시지는 아주 중대한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두 번째 챕터로 이동하면 물질은 하나님의 축복이라 생각하는 통념에 대해서 다루게 된다. 이를테면 <잠언>에는 그러한 구절들이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자명한 것은 그와 반대되는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는 무익(11:4)’하다는 주장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같은 지혜문학의 장르에 속하는 <전도서>로 넘어가면 비로소 그러한 통념은 박살난다. <전도서>부와 재물의 어두운 면을 조망한다.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질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인생의 분명한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세 번째 챕터는 우리가 종종 오인하는 복음서의 시대적 배경을 다룬다. 이를테면 당대에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아니었다는 사실, 또한 화폐 자체가 종교적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 더 나아가 당대의 유대 땅에 살던 이스라엘 민족이 로마 치하에서 엄청난 경제적 환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서술한다. (사실 본 챕터는 경제관념과 무관하게 복음서 이해에 충분한 도움이 되는 챕터이기도 하다.)

 

왜 저자는 앞의 세 챕터를 통해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오늘날 유행하는) ‘번영신학의 근저에는 (저자가 지적한) 오해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질서를 성경으로 그대로 갖고 들어와 읽어버리는 오해, 상호 반대되는 주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향별로 선별하여 읽고 믿어버리는 오해. 이런 오해들을 지적한 저자는 다음 챕터로 넘어가서 본격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경제관념을 다룬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경제관념.

 

다음 챕터는 예수의 지혜교사로의 면모를 조망한다. 특히나 재정관에 있어서 말이다. 특별히 해석에 있어서 꽤 난맥을 초래하는 불의한 청지기비유를 다룬다. 불의한 청지기는 도대체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있을까? 저자는 데렛의 주장을 빌어와 그가 이자를 면제해주고 원금만 갚게 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혹은 피츠마이어의 주장을 빌어와 청지기가 중간 수수류를 빼고 원금을 걷는 식으로 거래를 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어쨌건 그는 (불의하지만) 재물을 통해 빚진 자에게 관대히 행했다. 저자는 여기서 두 가지의 결론을 도출한다. 첫째는 돈 자체가 부패를 유발하기에 정직하게 사용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며, 둘째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관대히 베풀라는 명령이다.

 

다음 챕터는 야고보서의 내용을 다루면서 (가난한 자들을 향한) 차별부자들을 향한 심판의 내용을 다룬다. 분명 야고보서는 2장 시작부터 부한 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차별의 내용을 다루기 시작하며, 5장은 그러한 차별을 행하여 심판의 때를 앞당기는 부자들을 책망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야고보서의 결론으로 공평정당함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것이 (야고보서에서는) 산 믿음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다음 챕터는 누가행전을 다룬다. 먼저 누가복음에서는 희년에 대한 암시가 뚜렷하다. (더 나아가 저자는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한 해가 희년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론한다.) 더군다나 누가복음의 기깔나는 이야기 중의 하나는 바로 거지 나사로와 부자이다. 그리고 저자는 여기서 부가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바리새인들의 오랜 믿음에 대한 책망을 읽어낸다. 사도행전도 비슷한 관심사를 지닌다. 초대교회는 무엇보다도 구제에 힘쓰는 공동체이며, 물질을 공유하는 공동체였다. 이어 저자는 이 내용들을 정리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하는 구제를 누가행전이 권면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음 챕터는 바울서신이다. 바울은 무엇보다도 돈과 같은 재물을 사랑하고 그 재물을 얻기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뿐만 아니라 단정한 옷을 입으라고 권고하는 것을 넘어서, 불필요하게 화려하거나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옷을 피하라는 것이 바울의 권면이라고 정리한다. 바울서신이 담고 있는 경제관념의 정점은 바로 연보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위한 연보’. 따라서 저자는 위기 속에서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진정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믿는 이는 누구인지 확실하게 증거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저자가 정리한 신약성경의 경제관념은 결국 예수 믿어 부자 되자(번영신학이 갖고 있는) 통념이 아닌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첫 챕터에 언급했던 자선행위는 선택이 아니라 명령이라는 그의 언설이 탄탄한 성서적 근거를 갖고 있음을 또한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여덟 번째 챕터의 주인공은 요한계시록이다. 실제 요한계시록의 비판대상은 먼저는 로마이지만, 부와 장수를 위해 황제와 로마제국에 협력했던 높은 엘리트들도 그 대상이었다. 당대의 로마제국에는 6천만(총 인구의 1/2~1/3이라고 한다)이 노예였다. 더 나아가 (저자의 진술을 따라가다 보면) 로마제국이 돈으로 말미암아 찌들어버린 탐욕의 사회 그 자체임을 알게 된다. (또한 저자는 우리사회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이 바로 이 사회 전체를 향한 메시지임을 부각시킨다. 또한 그 사회가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포함된) 개인들의 삶을 파멸로 몰아가는지 폭로한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라고 명령한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다음 챕터는 (신약성경이 말하는) 청지기적 삶 자체에 대해 다룬다. 저자는 특별히 크레이그 블룸버그를 인용하여 (그의 저서인)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라는 가치에 대해 말한다. 실제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주변 사람들을 풍성하게 대접하고 또한 구제해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이를 위해서) 극도의 부와 극도의 가난은 용납하기 힘들다. 따라서 우리는 충실하게 (돈과 이익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노동해야 한다. 또한 돈을 벌면서 비윤리적인 관행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렇게 번 돈을 통해서 하나님과 이웃을 후하게 살아가라고 권면한다.

 

마지막으로 열 번째 챕터는 과도한 소비적 삶에서 벗어나는 삶에 대해 다룬다. 그는 먼저 론 사이더의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이란 책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뜨거웠던 당대의 반응을 인용한다. 그리고는 물질주의와 과시적 소비로 점철된 오늘날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제시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물질주의와 과시적 소비와 같은) 그런 이야기는 하지도 마라.

  2. 필수품과 사치품을 분별하는 능력을 키워라.

  3. 희생이 필요한 사역에 헌신하라

  4. 충분히 돈을 벌었다면 남은 삶을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라

  5. 지출, 특히 재량 지출의 내역을 평가하라

  6. 낭비를 줄이라.

  7. 돈쓰기 좋아하는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

  8. 자본주의가 옳다는 생각을 버려라.

  9. 빚을 탕감해주고 대가 없이 돈을 빌려주라.

  10. 신용카드를 버려라.

 

물론 마지막 챕터에서 그가 제시한 원칙은 레디컬하다. 과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물질주의와 과시적 소비로 점철된 사회속에서 (여덟 번째 챕터에서 언급된) 거기서 나오라!’를 실천하는 방법이라 생각하면 그리 과하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도 요한계시록의 기자가 비판하고 있는 대상일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나가는 말 : 소비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법.

 

<예수님의 경제학 강의>는 오늘날 소비사회 속에서, ‘이라는 것을 때놓고 살 수 없는 우리들에게 쓰인 실천지침서에 가깝다. 더 엄밀히 말하자면 이라는 것을 때놓고 살 수 없는 오늘날의 소비사회 속에서 유행하는 번영신학을 대화상대로 소환하여서 치열하게 대결을 벌이고 있는 성경적 재정관에 관련된 책이다. 지금까지의 서평을 종합해보면 성경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의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 따라서 우리는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한다는 사실 외에는 크게 다른 세밀하고도 구체적인 지침을 내려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가 을 어떻게 (성경적으로) 벌고, 또 소비해야 할지 잘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경이 분명하게 제시한 지침 위에서 오늘날의 사회를 분석하며 우리의 실천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성경이 선명하게 말하고 있는 사실만큼은 다르게 읽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경제학 강의>는 간명하게 쓰여진 책인 동시에 아주 래디컬한 실천지향점으로 마무리 되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바로 실천지향점을 수용하고자 하기보다는 저자의 논리를 촘촘이 따라 읽었으면 한다. 성경이 돈에 대해서 어떤 그림을 그려내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위해서 말이다.

 

몇 마디를 더 거들자면 본 책은 이러한 저자의 논리를 보충하기 위해 돈에 대한 성경구절과 신앙적 격언을 챕터의 표지마다 배치했다. 더 나아가 부록으로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돈에 대한 10가지 근거 없는 믿음과 존 웨슬리의 돈의 사용이라는 설교문을 담아내고 있다. 돈을 어떻게 그리스도교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지침서가 되기 원하는 출판사와 기획자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볼 수 있겠다. 그 바람처럼 본 책이 돈에 대해서, ‘신앙적으로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