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해야 왕도 인간이다. (다니엘 4장, 5장)

2021. 2. 14. 07:57

모든 인간은 경쟁하며 살아갑니다. 힘껏 경쟁에 참여하건 느슨하게 경쟁에 참여하건 다들 경쟁에 참여합니다. 힘껏 경쟁에 참여하여 많은 결실을 맛본 사람들이 있고 경쟁을 사실상 포기한채 낙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목회자의 세계, 전도사와 목사들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처럼 젊은 전도사 시절에는 좋은 교회, 교회, 규모 있는 교회, 유명한 목사님이 있는 교회의 부교역자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다가 목사가 되고 연차가 쌓이면 담임목사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또한 이왕이면 교회, 좋은 교회, 규모가 있고 역사와 명성이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물론 그런 경쟁에 소극적으로 떨어져있는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같은 사람조차도 피하지 못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사역하세요?”, “ 교회는 모이나요?”, “ 교회 담임목사님은 누군가요?” 

 

우리는 경쟁의 선두에 있는 사람, 정점에 있는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또한 교회의 일반적인 신앙은 하나님의 복을 받으면 남들보다 쉽게 경쟁의 선두에 있다, 혹은 정점에 있다고 말합니다. 잘나가는 사람들, 연애인들의 간증을 들으면 하나님께서 시의적절하게 도와주셔서 경쟁에서 쉽게 승리해서 정점을 찍었다는 말로 가득합니다. 물론 그들의 간증은 맞을 겁니다. 은혜롭기도 합니다. 도전이 되고 감동 포인트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렇게 하나님의 도움, 축복, 시의적절한 은혜로 말미암아 경쟁의 선두에, 정점에 서게 사람이 1%라면, 하나님을 간절하게 믿고 절절하게 기도하며 살아가지만 경쟁의 선두에서 떨어진 사람이 10%, 그리고 하나님을 간절하게 믿지도 않고 적어도 내게 그런 축복이 것이란 기대는 애초에 집어친채 살아가는 사람이 90%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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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의 번째 이야기는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왕을 소개합니다. 그는 권력의 최정점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가 꿈이 하나 있습니다. 드높고 화려한 신앙이 있습니다. 그런데 머리는 순금, 나머지는 , , 쇠와 진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꿈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바벨론 제국의 시작은 느부갓네살의 황금기로부터 시작했겠지만 결국 시대가 지나면 황금기가 쇠락하여 은의 시대가 되고, 놋의 시대가 되고, 결국 산산히 무너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꿈의 해석을 들은 느부갓네살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다니엘 2 후반부에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3장으로 넘기면 느부갓네살은황금으로 신상을 만드는 이야기 등장합니다. 자신이 세운 제국은 절대 꿈처럼, 순금과 은과 , 쇠와 진흙으로 되어 결국엔 무너질 제국이 아니라, 머리 끝부터 끝까지 화려한 황금으로 , 결코 무너지지 않을 제국이 것이라는 담대한 선언 자체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제국의 모든 신민에게 금신상에게 절하라고 명하는 행위는, 그의 제국이 황금의 제국, 결코 무너지지 않을 제국임을 세상 가운데 천명하는 행위였습니다.

 

하지만 느부갓네살에게, 결코 제국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천명하는 느부갓네살에게, 새로운 꿈이 찾아왔습니다. 10절부터 17절까지의 내용(새번역)입니다.

 

내가 침대에 누워 있을 때에, 나의 머리 속에 나타난 환상은 이러하다. 내가 보니, 땅의 한가운데 아주 높고 나무가 하나 있는데,

나무가 점점 자라서 튼튼하게 되고, 높이가 하늘에 닿으니, 끝에서도 나무를 있었다.

나무는 잎이 무성하여 아름답고, 열매는 세상이 먹고도 남을 만큼 풍성하였다. 들짐승이 그늘 아래에서 쉬고, 나무의 가지에는 하늘의 새들이 깃들며, 모든 생물이 나무에서 먹이를 얻었다.

내가 침대 위에서 나의 머리 속에 나타난 환상을 보니, 거룩한 감시자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큰소리로 외치며 이렇게 명령하였다. ' 나무를 베고서 가지를 꺾고, 잎사귀를 떨고서 열매를 헤쳐라. 나무 밑에 있는 짐승들을 쫓아 버리고, 가지에 깃든 새들을 쫓아내어라.

다만, 뿌리의 그루터기만 땅에 남겨 두고, 쇠줄과 놋줄로 동이고 들풀 속에 버려 두어라. 하늘의 이슬에 젖게 하고, 땅의 가운데서 들짐승과 함께 어울리게 하여라.

그의 마음은 변하여서 사람의 마음과 같지 않고, 짐승의 마음을 가지고서 일곱 때를 지낼 것이다.

이것은 감시자들이 명령한 것이며, 거룩한 이들이 말한 것이다. 이것은 가장 높으신 분이 인간의 나라를 지배하신다는 것과, 뜻에 맞는 사람에게 나라를 주신다는 것과, 가장 낮은 사람을 위에 세우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도록 하려는 이다.’

 

이후로 일어난 일은 간단합니다.  28절입니다. “ 모든 일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

 

모든 일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그대로 일어났다.

열두 달이 지난 뒤에, 어느 , 왕이 바빌론 왕궁 옥상에서 거닐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세운 도성, 거대한 바빌론을 보아라! 나의 권세와 능력과 나의 영화와 위엄이 그대로 나타나 있지 않느냐!"

말이 왕의 입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말소리가 들렸다. "느부갓네살 왕아, 너에게 선언한다. 왕권이 너에게서 떠났다.

너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뜯어먹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낸 다음에야, 너는 가장 높으신 분이 인간의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것과, 그의 뜻에 맞는 사람에게 나라를 주신다는 것을 알게 것이다."

바로 순간에 말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루어져서, 그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뜯어먹었으며, 몸은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에 젖었고, 머리카락은 독수리의 깃털처럼 자랐으며, 손톱은 새의 발톱같이 자랐다.

"정해진 기간이 되어, 느부갓네살은 하늘을 우러러보고서 정신을 되찾았고, 그리고 가장 높으신 분을 찬송하고, 영원하신 분을 찬양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렸다. 그의 통치 영원하고 그의 나라 대대로 이어진다.

그는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와 땅의 모든 거민에게 뜻대로 하시지만, 아무도 그가 하시는 일을 막지 못하고, 무슨 일을 이렇게 하셨느냐고 그에게 물을 사람이 없다.

 

오늘의 번째 이야기는 매우 간단합니다. 명료합니다. 세상에서 그를 막을 것이 없었다고 생각한 , 경쟁에 있어서 가장 정점에 올라 자신이야말로 신과 같다고 자부하던 , 자신의 능력 때문에 제국은 영원할 것이라며 신이 계시한 꿈을 무시했던 , 그도 결국은 인간이었다 말입니다. 그도 결국 하나님께서 치시니까 방에 꼬꾸러졌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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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의 번째 이야기는 바벨론의 마지막 벨사살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시작부터 그가 느부갓네살보다 더욱더 권력에 취했다는 사실을 부각하기 위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2절입니다.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조차도 박물관에 보관했던, 예루살렘 성전의 그릇과 그릇을 가져오라고 이후 그릇에 술과 음식을 담아 파티를 즐깁니다. 추측컨데 그는 예루살렘 성전 뿐만 아니라 그가 정복한 많은 나라들의 신전의 기물들을 차례대로 꺼내왔을겁니다. 누군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잔에 술을 붓고, 누군가는 하늘신의 잔에 술을 붓고, 누군가는 바다신의 잔에 술을 붓고, 누군가는 풍년의 신의 잔에 술을 붓고 서로 건배하며 바벨론제국이 정복한 신들을 조롱하고 유린했을 겁니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마저도 조롱당하는 파티의 가운데에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5-6) 그러자 사람들은 당황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자신들이 조롱하던 수많은 중에 신이 노했다는 직감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때 일을 목도한 왕비는 사람을 기억해냅니다. 바로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때에 총리로 재직하였던 다니엘입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부친으로 번역된 단어아브 아버지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조상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의 아들이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명확한 의미를 담아 의역한다면바벨론 제국을 세운 시조였던 느부갓네살 적합할 것입니다. 어쨌건 오랜기간동안 권력에서 물러났던 다니엘이 소환됩니다. 그는 등장과 함께 손가락이 끄적인 글자를 풀이합니다. ‘메네 메네 데겔 바르신’ “왕의 나라는 이제 저울에 달아보니 끝이 나버렸습니다벨사살왕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먼저는 섬뜩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다니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찮은 정복당한 이스라엘 포로민 중의 하나로 여긴 같습니다. 하찮은 점쟁이의 경고 정도로 생각했던 같습니다. 그가 공언한 때문에 다니엘을 셋째 가는 통치자로 삼긴 하지만 뿐입니다. 느부갓네살처럼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다니엘이 번째 통치자가 이후 30절은 그의 운명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날 밤에 갈대아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오늘 번째 이야기도 매우 간단합니다. 명료합니다. 왕도 기껏해봤자 인간이라는 겁니다. 평생 자신의 권력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지만, 모든 권력과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운명조차도 알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이라는 사실, 왕조차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통치하시고, 폐위하신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오늘 번째 이야기와 번째 이야기의 공통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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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의 이야기가 기억나시나요? 지난 주의 이야기는 3장과 6장이었습니다. 3장과 6장은 제국 속에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겪는 절체절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신앙을 지킨다는 이유로 죽음의 위기에 몰렸지만 결국 끝내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그들을 구원하신 이야기입니다. 3장과 6장은 4장과 5장을 감싸고 있습니다. 샌드위치의 빵이 되어 4장과 5장이라는 고기를 감싸고 있습니다. 3장과 6장은 제국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운명을 다룬다면, 4장과 5장은 제국 속에서 가장 정점에 있는 왕의 운명을 다룹니다. 그런 의미에서 3장부터 6장까지는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제국은 누가 다스리나요? 정말 왕이 다스리나요? 느부갓네살이 다스리나요? 벨사살이 다스리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립니다. 제국이 아무리 용을 써도 하나님의 백성을 죽일 없었다는 이야기 3장과 6장의 이야기입니다. 반면 자신이 최고인줄 아는 제국의 왕이 하나님께 결국 심판받는 이야기 4장과 5장의 이야기입니다. 3장부터 6장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믿기 힘든 비밀 하나를 알려줍니다. 이스라엘만 하나님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제국도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성전에만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이방 제국의 땅에서도 하나님이 계시며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 믿음의 백성들이 죽을 같은 위기를 맞이하지만 실은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사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 제국의 왕들이 기고만장하게 사는 같지만 실은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러줍니다. 제국을 다스리는 분은 누구십니까? 제국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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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명의 교회 전도사로 살아가면서, 앞으로 목사로 살아갈 삶을 살아가면서 제가 가진 가장 고민 혹은 유혹/시험이 무엇일까요?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대형교회 목사들이 저렇게 형편없냐고 말합니다. 명성교회는 세습문제, 사랑의교회는 표절논문과 학위논란, 순복음교회는 착복 문제 등등. 유명하고 위대하고 한국교회의 얼굴이라 있는 목사들이 알면 알수록 형편없습니다. 더군다나 전도사로 살다보니 세계 내에서만 있는 이야기들을 듣게 되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실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건 제게 그렇게 고민이지 않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목사들 말고, 그런 나쁜 사람들 말고, 함께 살아가는 동료 교역자들이 생각보다 제대로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얼굴에 침을 뱉는 것입니다만 정말 제대로 전도사/목사 찾기 힘듭니다. 잘나가고 위대한 것처럼 보이는 목사들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문제가 많습니다. 설교를 표절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이 글을 자기가 글인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가서 목회는 안하고 정치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한 그렇게 고민이지 않습니다. 사람 모인 곳이니 그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있어서 가장 고민은 이것입니다. 내가 정말 제대로 살면, 내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사람들에게 목회하고, 성경을 연구해서 순전하고 올바르게 가르치면, 그게 결실이 있겠냐의 문제입니다. 내가 제대로 하나님 앞에 살면 목사들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있겠냐의 문제입니다. 제가 똑바로 살고 있고 나만 깨끗하고 옳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똑바로 살고, 깨끗하고 옳게 살면, 앞으로 목사답게 살면, 그게 되겠냐 스스로 물을 선뜻 답을 못하겠습니다. 제대로 성경 연구하고 바르게 가르치는 전도사보다 문화상품권 뿌리는 전도사가 사역을 하는 같아보입니다. 사람들에게 마음을 쏟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돌보는 전도사보다 목사님들이나 교회 내의 힘있는 집안에 줄을 서는 정치질 잘하는 전도사가 인정받고 잘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소위 말해서 세상이, 아니 적어도 교회판이, 하나님이 정말 다스리고 있냐? 문제가 앞에 걸리는 문제입니다. 저보다 10 어린 후배 전도사가 찾아와서전도사님 진짜 전도사님 말씀처럼 성경 제대로 연구하고 설교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해 대하면 목회 성공할 있겠습니까?’라고 물으면 ' 당연하지라는 대답이 자신있게 나오지 않습니다. 조금 후까시 잡을 때는 죽으면 죽는거지 그런걸 물어봐 먹어도 '라고 말하지만 가끔 우울하고 좌절되어 있을 때는 그냥 적절하게 정치질 , 그냥 적절하게 살아남을만큼 타협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게 진짜 고민이고 진짜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다르시고 계신가? 내가 제대로, 똑바로, 신앙적으로 살면 하나님이 인정해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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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번째 이야기 속에서 다니엘의 심정을 상상해보십시다. 자신이 젊었을 이를테면 30 초반에 바벨론에서 총리를 했습니다. 유대인의 대표로,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로 그는 살았습니다. 속칭 성공의 정점을 찍은 사람입니다. 저같은 목회자 세계로 치자면 30 중후반에 멀쩡하고 역사와 전통이 있고 규모와 재정이 튼튼한 교회에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성공한 인생입니다. 승리한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신 인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번째 이야기로 추측컨데 그는 이후로 변방에 밀려났습니다. 10 멋지게 담임목사로 목회하다가 교회에서 나오게 된겁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잊혀진채 살아갑니다. 다니엘이 꼴이었습니다. 정말 행복한 인생입니까? 정말 승리하고 성공한 인생입니까? 정말 복받은 인생입니까? 그의 인생은 기구합니다. 총리가 되었음에도 친구가 풀무불에 들어가는걸 지켜봐야했습니다. 또한 느부갓네살이 죽자 그는 오랫동안 무명의 야인으로 지냅니다. 드디어 번째 가는 권력서열에 오르게 되지만 다시 왕은 죽습니다. 정말 그의 인생이 행복합니까? 정말 그의 인생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까? 기구하고 잔인한 인생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의 인생은 하나님의 복이 가득한 인생입니다. 그의 인생은 가장 행복한 인생입니다.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생애를 통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생애를경쟁에서 이기고 승리하는 잣대로 본다면 잔인하고 기구한 인생이겠지만, 그의 생애를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경험하는 잣대로 본다면 그의 인생은 복된 인생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권세자들을 끝내 심판하시는 장면들을 가까이서 목도했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장면을 가까이서 목도했고 또한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는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고 통치하고 계시는지, 똑바로 살면 정말 인정받는지 고민하는 저와는 달리, 단호하게 그의 후배들에게 말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교만한 제국의 왕들을 폐위하시고, 신실한 백성들을 친히 지키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다스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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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고민하고 번민하는 자신을 위해서, 또한 저와 같은 고민을 여러분을 위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오늘 설교를 갈음할까 합니다. 우리는 경쟁하며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누가 가장 정점에 올라가 있는지에 관심을 두고 미쳐있는 세상 속에서, 실패, 가난, 무능과 같은 단어를 경멸하고 성공, 축복, , 권력과 같은 단어를 좋아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나이가 먹어갈수록 어린시절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꿈에 비해 너무도 초라하고 평범해진 자신으로 인한 스스로에 대한 경멸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오늘 다니엘서는 실패, 가난, 무능과 같은 단어와 유사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포로기에 나라와 성전과 땅과 왕을 잃고 끌려간 포로민들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철저히 실패하고 무능한 포로민들의 입장에서, 제국의 압도적인 권력 앞에서, 그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신다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하나님 통치의 역설적인 장면은 복음서에서도 반복됩니다. 여인에게서 아이가 태어납니다. 아이는 자라나서 창녀와 세리와 이방인과 어울립니다. 귀신들린 자와 병든 자들이 그를 따르는 청중의 대다수입니다. 권력자와 힘있는 자들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그가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하나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에 약한 자의 모습, 실패한 자의 모습, 가난한 자의 모습, 무능한 자의 모습, 빼앗긴 자의 모습, 그렇게 오셨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오셔서 세상을 다스리셨다고.

 

사랑하는 가나안교회 청년 여러분.

코로나로 인해 한국교회가 많이 욕을 먹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시기는 한건지에 대한 회의가 정점에 달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교회를 다스리고 계십니까? 정말 하나님은 땅을 다스리고 계십니까?

또한 점점 사회의 경쟁이 과잉되면서 우리 인생이 점점 힘들어집니다. 예전 우리 아버지세대만큼 개천에서 용나기 힘든 시대입니다. 노동의 강도는 높아지지만 그만큼 얻을 있는 수익은 줄어듭니다. 아니 생존이라도 있다면 감사한 형편입니다. 잘되지 않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우리 삶을 정말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십니까?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의 존재, 이름, 인생을 알고 계십니까?

 

오늘 다니엘서는 말합니다. 

 

결코 하나님이 없어보이는 상황에 하나님이 계셨다고 말을 합니다.

결코 꺾이지 않을 왕의 권력이 하나님 앞에 결국 무릎을 꿇게 됩니다.

죽을 것만 같았던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결코 하나님이 없어보이는 시대 속에, 바로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하나님 없는 같은 세상에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가난하고 실패하고 연약한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이 결코 없을 것만 같은 세상을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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