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닭없는 신앙 (욥기 1:9b)

2021. 2. 4. 03:57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욥기 1:9b)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 신앙고백에 대부분 동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이러한 신앙고백을 갖고 살아가다보면 의문이 생기는 일이 두가지가 아닙니다. 특히나 우리 삶에서 결코 이해할 없는, 아니면 비극적인, 혹은 너무나 슬픈 상실의 순간을 맞이할때 우리는 도리어 신앙고백 앞에서 길을 잃어버립니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

정말?

그렇다면 ?

 

우리 인생에 비극이 없을 때에는 매우 쉽고 간단하며, 무엇보다 은혜로운 신앙고백입니다. 

우리 인생에 아픔과 눈물이 없을 때에는 매우 감격스러운 신앙고백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

 

지금으로부터 15여년 전의 일입니다. 제겐 첫사랑이나 다름없는 누나가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에 분은 저에게 많은 영역에서 힘이 되곤 했습니다. 모태신앙이 아니었던 저는 그때 당시 신앙이 매우 뜨겁고 열정적이었지만 그만큼 아는 것도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누나는 저에게 신앙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또한 저는 집의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서 그때까지 문화활동이란 것은 결코 모르는 오로지 싸고 저렴한 것만 찾고 다니는 사람이었지만 누나는 저에게연상의 그녀였기에 다양한 문화를 즐길 있도록 안내해주었습니다. 따지고보면 카페에도, 후식이 나오는 레스토랑에도, 좋은 분위기의 장소에도 그분 덕택에 모두 처음 접할 있었습니다.

 

1 정도를 사귀다가 상황이 맞지 않아, 고급스러운 표현으로 아다리가 맞지 않아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매우 매우 신앙이 좋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헤어짐의 결과를 받아들이자마자 거의 2-3일은 펑펑 울었습니다. 얼마나 울었냐면 수건으로 눈물에 젖은 방바닥을 닦을 정도였고, 당시에 제가 살던 곳의 방바닥 장판은 눈물을 먹어서 부풀었을 정도였습니다. 슬퍼서 울기도 했고, 인생의 반쪽이 떨어져나가는 고통 때문에 울기도 했지만, 울음의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회개였습니다. 헤어지고나니 제가 하나님께 잘못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너무 음탕했고, 저는 하나님보다 여자친구를 사랑했으며, 여자친구를 사랑했지만 저의 다혈질 성격 때문에 그녀를 힘들게 했습니다.

 

진짜 이별에 이르기까지는 1-2달이 걸린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는 1-2달의 나날을 겪으면서 작은 희망 하나를 가졌습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돌이키실 이라는 희망이었습니다. 실제 저는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 생각했습니다. 여자친구와 이별을 하게 이유는 바로 나의 죄된 모습에 있었고, 내가 죄된 모습으로부터 펑펑 울며 회개한다면 결국 하나님께서 다시 돌이키실 것이라는 믿음이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이별통보를 받은 이후에도 저는 여자친구와 만날 있었고, 간혹 희망의 불씨를 다시 살리는 그녀의 애매모호한 태도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어땠을까요? , 헤어졌습니다. 완전히 헤어졌습니다. 하나님께 회개도 했고 펑펑 울었지만 다시 만나는 일은 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일로 신앙이 무너지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저는 하나의 작은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인생을 다스리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여자친구와 나를 헤어지게 것일까? 물론 언젠가 그렇게 생각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 그녀가 짝이 아니여서 그랬겠구나하지만 말끔하고 시원한 답변은 되지 못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 살아갈수록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까?’하는 일이 우리 삶에 빈번히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고 생각을 해봐도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는지도저히 없는 일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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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욥기입니다. 

 

욥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처음부터 멋지게 소개됩니다.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그대로 신앙적으로 도저히 흠을 잡을 없는 인물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탄, 영적존재들이 모인 천상회의에서 욥의 신앙을 자랑할 정도입니다. 사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는 매우, 매우, 비극적입니다.

 

사탄은 가지의 의문을 제기합니다.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묻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욥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 신앙이 엄청 좋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 비해 엄청난 복을 받았다고 알려져있는데 이게 말이 안된다는 겁니다. 신앙이 좋아서 복을 받은게 아니라 복을 받으니까 신앙이 좋은거 아니냐고 묻는 겁니다.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재벌갑부고, 얼굴은 박보검이고, 시험은 칠때마다 100점맞고, 교회에 가면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하는 일마다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는 사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성은’, 이름은요비’, ‘이요비’. 글자로 줄여서 . 누군가는 말합니다. ‘신앙이 저렇게 좋고 교회봉사를 열심히 하니까 복을 받은거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말합니다. 복을 받았으니까 신앙도 좋고 교회봉사도 하는거라고. 지지리 가난한 가정에서 못생긴 얼굴로 머리도 나쁘게 태어나서 교회사람들에게 이미지도 안좋았다면 과연 그랬을까 의문을 제기합니다. 사탄이 제기한 의문도 그와 같습니다.

 

덕분에 욥은하나님의 허락하에서 고난을 맞이하게 됩니다.

 

모든 소유물, 재산 뿐만 아니라 자녀까지도 잃게 됩니다.

 

하지만 욥은 소유물과 자녀를 모두 잃은 이후에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복을 가져가실 수도 있다는 고백입니다. 이런 욥의받은 복을 빼앗겼음에도 여전히 신앙이 좋은 모습 두고 하나님은 다시 사탄에게 자랑합니다. 하지만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에 이렇게 반박합니다. ‘여전히 받은 복을 모두 빼앗기지 않았다' 말입니다. 모든 소유물, 재산 뿐만 아니라 자녀를 빼앗는 것에서 걸음 나아가 건강까지 빼앗아보자고 제안합니다. 하나님은 다시 허락합니다.

 

덕분에 욥은하나님의 허락하에서 재산과 자녀를 잃고, 이제 몸에 종기가 나서 고통스러운 삶을 마주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었을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여러분이 혹시 천사라고 생각해보세요. 하나님과 사탄이 주고 받는 모든 대화를 낱낱이 들었습니다.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욥의 인생은 완전히 무너져내렸습니다. 재산도, 자녀도, 건강도 잃었습니다. 오로지 그에게 남은 것은 신앙고백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아까는 복을 주신 이도 여호와시며, 복을 거두어가신 이도 여호와라고 고백했다면 이제는 여호와께서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가련하고 불쌍한 욥을 보며, 또한 사탄과 하나님의 부당거래를 보며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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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나이로 치자면 아직 20살이 되지도 않은 미성년자입니다. 목회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이후에 저는 제가 늦게 교회를 다녔다는 사실이 가끔 거슬리기도 했습니다. 지난 교회에서는 다른 교역자가 휴가를 가는 바람에 제가 1년에 차례 유아부, 아동부 설교를 맡곤 했습니다. 그때 저는 소위멘붕 빠졌습니다. 도대체 이야기해야 할지 도저히 감을 잡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느순간부터 제가 고등학생부터 교회에 나갔다는 사실이 조금 자랑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교회에 다닐 때부터의심하고 비판하는 사고 기본적으로 깔려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에겐 순수하고 순전한 믿음이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순수한 표정으로 믿는 했지만 속으로는 계속 질문을 던졌습니다. ‘?’ 돌이켜보면 끝없는 의심과 질문이 오늘날 저를 성장시킨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유아부, 유치부, 어린이부에서 주로 가르치는 신앙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아요저는 말에 동의합니다. 또한 유아부, 유치부, 어린이부에서 주로 가르치는 신앙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벌을 받아요 또한 말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말에 동의하는 동시에 복을 받는다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며, 저주를 받는다고 하나님께 불순종했다는 말은 아니다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인생사와, 복잡한 인생사에 개입하셔서 삶을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는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벌을 받아요라는 어린이들의 신앙고백으로는 도저히 포착할 없는 복잡미묘한 측면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고 믿는다 할지라도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순종하려한다면 이는 온전한 순종이지 않을 겁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벌을 받는다고 믿는다 할지라도 벌을 받지 않기 위해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다면 이는 어떤 의미에서 다른 의미의 불순종일 겁니다.

 

지금껏 7 정도 사역을 하면서 중고등부와 청년부만 맡아온 저에게 중요한 질문은벌을 받는 것만 같은 상황에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가르치는 것이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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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읽은 이야기는 매우 복잡한 이야기 같지만 매우 간단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욥이 하나님께 벌을 받고 있는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하나님께 벌을 받는 같을 때가 있습니다. 곁에 사는 신앙의 벗들이하나님께 벌을 받는 같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입은 매우 촐삭거리고 방정맞으며 그때에 신앙적으로 마디를 던지는 것이야말로 참된 신앙의 증표라 생각하는 말도 안되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우리는 그때마다 이런 말을 합니다. ‘회개해, 하나님께서 돌이키실거야’, ‘하나님께서 너를 벌하고 있구나. 일단은 엎드리는게 좋지 않을까?’, ‘마음 속에 고백하지 않은 죄가 있는거 아냐?’

 

욥은 하나님과 사탄이 어떤 대화를 주고 받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욥은 자신의 자녀가 죽고, 소와 나귀와 양과 종들과 낙타를 모두 빼앗겼음에도, 또한 몸에는 종기가 나서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고백할 뿐입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며 거두신 이도 여호와십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이런 욥의 고백, 또한 욥의 태도가 보여주는 신앙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바로 까닭없는 신앙입니다. 사탄은 번에 걸쳐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하지만 욥기 1-2장에서 보여주는 욥의 모습은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입니다. 재산을 잃어도, 자녀를 잃어도, 몸에 종기가 나도, 아무리 상식적이고 이성적으로 따져봐도 수일간에 들이닥친 재앙은 하나님의 저주나 징벌일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별개로 까닭 없이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

 

사탄이 보기에 욥은 부족해보였습니다. 그는까닭때문에 신앙하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 받기 때문에신앙하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욥은까닭때문에 신앙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했습니다. ‘ 받기 때문에신앙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계속 이유를 묻습니다. 

 

직장에 떨어지면 직장에 떨어진 이유가 뭘까 하나님께 묻습니다. 편입이 실패하면 이유가 뭘까 하나님께 묻습니다. 옆에 쟤는 복받았는데 그만큼 복을 받지 못한 이유가 뭘까 하나님께 묻습니다. , 이유를 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이유 묻다보면 소중한 것을 잃기 쉽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답답할때는이유 물어야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신앙은이유 굳이 묻지 않는, ‘까닭없는 신앙입니다. 삶에 어려움이 닥쳐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삶이 고난이 닥쳐도 여전히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믿음, 아무런 이유와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믿음.

 

코로나가 종식되건 종식되지 않건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건 오프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건

혹은 여러 사정 상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건

부하건 가난하건

취업에 성공하건 실패하건

사랑에 성공하건 실패하건

진로가 훤히 보이건 앞길이 막막하건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까닭 없는신앙.

 

그런 까닭없는, 이유를 알지 않아도 여전히 유효한 신앙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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